언제까지 직장을 다녀야하나요

AI를 적극적으로 업무에서 사용하면서 개인의 업무 생산성이 엄청나게 극대화되는 것을 거의 매일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반대급부적으로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나의 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하는 것인가, AI를 잘만 활용한다면 회사라는 것 없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제는 1인 창업, 1인 개발이 너무 쉬워진 그런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AI가 동료를 대체하는 시대
그 전에도 외주라든지 혼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거기에 그런 뜻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나보다 뛰어난 동료들이 많은 그런 곳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나 혼자 내는 결과물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더 좋은 결과물을 협업을 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AI가 그런 뛰어난 동료들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수준까지 올라왔고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이제 아이디어와 괜찮은 BM만 있으면 회사가 아니라 나 혼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그런 판이 깔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돈을 빼면, 회사에서 내가 얻는 것
개발자가 되기 이전에 소규모 UX 에이전시의 UXer로, 대기업 인턴 찍먹을 거쳐 두 번의 스타트업을 다니는 동안 어떻게 보면 꽤나 이제는 업력이 쌓인 사회인으로서 드는 생각은 내가 꼬박꼬박 8시간 + a의 시간을 회사라는 곳에 주면서 내가 얻는 것은 과연 돈을 빼면 무엇인가, 내 소중한 인생을 여기서 딜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코로나 테크를 잘 탄 운 좋은 사람으로 꽤 괜찮은 연봉을 받는 걸 생각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는 충분히 다닐만한 곳이다.
하지만 직장에 나란 존재를 온전히 맡기기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희미해진 지금, 한 직장을 3년 다니면 오래 다녔다고 생각하는 이 스타트업 씬에서 나 자신이 콘텐츠가 되고 내가 적은 글과 내가 만든 프로덕트가 내 콘텐츠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든다.
며칠 전에 엄마랑 둘이서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5년만에 다시 찾은 경주는 말 그대로 관광의 도시였는데, 몇 년 새 엄청나게 증가한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경주를 어떻게 알고 다 찾아온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엄마는 단박에, "너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힘을 무시하냐?" 라고 하셨지만, 진짜 "K" 컨텐츠의 힘이 이 정도라고? 대충 봐도 내국인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5:5의 비율로 보였다. 잘 만든 컨텐츠의 파워를 정말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나란 사람은? 나란 사람의 컨텐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나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사람들이 관심있어 할까? 누구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글 쓰는 개발자
나는 말도 어느 정도 조리있게 하는 편이지만, 그보다는 글맛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로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코딩이 내 적성에도 어느 정도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code라는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니 말이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오히려 개발이 더 쉽고 재밌고 무궁무진한 큰 세계를 맞딱뜨렸다고 느끼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요구사항을 자연어로 정리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AI 때문에 수많은 전공생들과 취준생들의 채용의 기회는 더 좁아지고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 개발자를 채용하는 인건비보다 AI 에이전트 몇 개를 더 굴리는 게 훨씬 효용이 있다고 생각할테니. 나 역시 문득문득 이러다 내 자리는 없어지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면접을 본 회사의 CTO님이 그런 질문을 하셨다. 신입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주니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들인, 경력직인 내가) 신입 개발자와 차별점은 뭐냐고 생각하냐고 물으셨다.
소위 짬이라고 생각한다. AI도 인간이 돌린다. 결국 AI 없던 시절에 동료들이랑 치열하게 토론하고 따지고 엎치락 뒤치락 했던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내 업력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뭐든 쉽다.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돌아가는 방식도 어느 정도 알고 도메인 지식도 어느 정도는 쌓였고, 그런 조각들을 조립하면 대충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한 번 홀로서기 도전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 때인가, 내 콘텐츠를 만들기에 적기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풀고 싶은 문제를 찾는 중
문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AI랑 코딩하면서 이제는 구현의 뾰족함이 아닌 문제 정의, 설계의 힘에서 잘하는 개발자와 그렇지 않은 개발자가 갈린다는 것을 알겠는데 막상 내 걸 하자니 어떤 것을 내가 풀어야 할 문제로 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직 풀고 싶은 문제가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를 풀기 대신에 내가 했던 고민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답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돌파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달까? (그래서 계속해서 누가 읽을지도 모르겠는) 글을 쓰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나를 위해
뭐든지 빨리 빨리, 하는 조직 내에서 자꾸만 나를 잃어가고 존중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내상을 입었다. 사실은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 안의 목소리가 계속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어릴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시나 소설의 주제, 인간성의 상실과 고독, 이런 것들이 참 많았다. 그 땐 글자로 외웠지 마음에 와닿지 않던 저 말이 근래에는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방증일까? 인간성이 뭘까? 결국 다정함, 인정, 측은지심.
일을 하는 게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측은해하고, 신뢰하고 선을 지키는 것이 협업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 아닐까?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본다.
요즘의 나는 지속가능력을 잃어버렸다. 여유가 없다. 체념했기 때문에, 다정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들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랑, 애정 이런 단어 참 진부하지만 결국 그게 사람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언제까지 직장을 다녀야 하나요?
최대한 빨리 탈출하세요! 이제 꿈을 펼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