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가다1

여행 기간 : 2024.09.18 ~ 2024.10.03
고등학교 때부터 현재까지 연락하고 만나는 내 유일한 동창이 2년동안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었다.
친구 핑계로 영미권에 가보고 싶었던 나는 친구가 24년을 마지막으로 귀국을 앞두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출발 3개월을 앞두고 급하게 호주행 티켓을 끊었다.
친구랑은 여행 내내 같이 있던 건 아니고 초반 3일과 마지막 이틀은 혼자서 보내는 일정이었다.
미리 미리 알아보고 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면 브리즈번 안 가고 멜번 갔을 거 같지만...) 생각없이 가는 맛이 또 따로 있으니까~? 는 사실 핑계고 현생을 살다보면 여행 갈 나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여튼 여행을 하면서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영국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많은 유럽인들이 호주로 이주 했고, 일종의 범죄 유배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보내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호주를 다니면 꽤 많은 지역명이 영국 내 지명과 겹친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주 공항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머그샷(?) 한 방 찍어주고 빠르게 입국심사를 마쳤다. 정말 특이한 점은 공항 절차 마지막에 마약 탐지견을 대동해서 사람들을 세워놓고 수색한다.
예전에 유럽 입국할 때는 막 공항 직원들 직접 대면해서 너 어디 묵니~ 누구랑 왔니~ 우리나라엔 왜 왔니~ 이런 거 열심히 묻고 영어로 대답하고 그랬는데 covid-19 이후 다 바뀐건지 그냥 원래 호주가 이런건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로 유럽도 가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고...) 여튼 혹시나 한국에서 갖고 온 타이레놀로 입국 심사에 문제 생길까봐 자진해서 마약 탐지견을 데리고 오신 분께 "저 아스피린 있는데 괜춘?" 했는데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쿨하게 "It's ok"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타이레놀이 아스피린 성분이 맞는지 모르겠네.)
처음 인터내셔널 공항에 내려서 공항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해 큰 한 손엔 캐리어를, 한 손엔 구글맵을 켠 폰을 들고 끙끙거리며 걸으니 친절하고 예쁘고 시크하기까지 한 매력적인 여성분이 (아마도 출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바쁘게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다가 어리숙한 나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도와줘야겠다 싶었는지) "Do you need help?"랬나 "May I help you?" 랬나 (분명 이것보다는 더 길게 물어본 거 같은데) 하여튼 도와줄까 하고 물었는데 고맙지만 거절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갔다.
열심히 걸으니 내가 예약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시드니 중심(harbour 뷰가 보이는 겁나 비싼 호텔들에서 언젠가는 묵을 수 있겠지... 신혼여행 여기로 올까?)이 아닌 zetland라는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한 쪽에서 버스로 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중심부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격 대비 룸 컨디션이 좋아져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나이가 있어서 번 돈을 여행에 올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돌아와서는 현생을 살아야지...)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공항에 새벽 5신가, 6시에 떨어졌다.) 숙소에 캐리어만 맡기고 오페라 하우스까지 걸어가는 미친 짓을 시전했다. 날씨가 좋았고, 여행 첫 날이었고, 내가 22살이 아니라 29살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노트북이라도 캐리어에 넣어 놓고 가방을 맸으면 좋았을 걸, 무겁디 무거운 맥북 프로를 열심히 이고 지고 몇 km를 걸으려니 오페라 하우스 옆 로얄 보태닉 가든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안 그래도 난쟁인데 땅으로 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았고 하버 브릿지랑 오페라 하우스가 마주 보고 있는지 몰랐는데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 하버 브릿지가 보여서 연신 우와를 외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다. 오페라 하우스를 딱 발견했을 때의 그 장엄함과 반가움은 언제 생각해도 생생하다.
(또 가고 싶다~🎵) 한참을 오페라 하우스 앞에 앉아 페리도 구경하고, 브릿지도 구경하고, 하버 주변을 탐색하듯 막 돌아다녔다. 하버 브릿지 옆 쪽으로 이동하니 트램 정류장이 나왔고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니 쇼핑몰이 나왔다.
쇼핑몰 내에 한국에서 유명한 호주 커피 가게(gumption coffee)를 찾았고 아이스 커피 한 잔 때려주었는데 약간의 산미가 있는 맛난 커피였다. 호주에 가기 전부터 호주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딜 가든 평타는 쳤기 때문에 그 말은 100퍼센트 인정하도록 하겠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여러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마주쳤고 난 원래 종교라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 같길래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서 건강과 행복과 안녕을 빌며 조금 머물다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까지 걸어가려고 한참을 걷다가 더는 이렇게는 못 걸을 거 같아 중간에 버스를 하나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들어가서 바로 샤워를 하고 조금 쉬며 재정비 후에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하버 브릿지를 감상할 수 있다는 시드니 천문대로 향했다. (첫 날에 영혼을 불태워버림)
몰랐는데 천문대를 기준 오른쪽에 하버 브릿지가 있었는데 거기가 동쪽이고 그 반대쪽이 서쪽이라서 석양과 브릿지를 한 컷에 담을 수는 없었고, 은은한 조명느낌으로 하버 브릿지를 1시간 넘게 구경하다 사람이 마구 몰릴 때 즈음 도망쳐 숙소로 돌아가 길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